비명이 들렸다.
그것은 외부에서가 아니라, 그의 내부에서 울려 퍼지는 무성한 비명이었다.
무대는 끝났다.
수많은 조명이 꺼지고, 팬들의 함성은 희미해졌으며,
이제 남은 것은 낯선 고요함뿐이었다.
"수고하셨습니다!"
누군가 옆에서 외쳤지만, 주원은 그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.
피곤한 얼굴을 감추려는 듯 캡을 깊게 눌러쓰고, 조용히 대기실 문을 열었다.
대기실 안,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살결을 훑었다.
거울 앞에 선 그는 무표정하게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.
마스카라가 지워진 눈, 건조한 입술, 지친 표정.
완벽한 '아이돌'의 그림자는, 조명이 꺼지자마자 사라졌다.
"오늘도 못 잘 것 같다."
잠을 자지 못한 지, 벌써 나흘째였다.
이유는 명확하지 않았다.
무대는 성공적이었고, 팬들도 사랑해줬고, 회사도 만족하고 있었다.
하지만 어째서인지, 밤만 되면 심장이 옥죄어왔다.
그때였다.
"이주원 씨."
낯선 목소리가 문가에서 들려왔다.
고개를 돌리자, 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.
깔끔한 셔츠, 정돈된 머리, 묘하게 무표정한 얼굴.
하지만 이상하리만큼, 눈빛은 깊었다.
"저는 오늘부터 이주원 씨 전담 매니저를 맡게 된 서이현입니다."
주원은 그를 가만히 쳐다봤다.
단정한 외형, 차가운 첫인상, 그리고… 뭔가를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.
"...처음 뵙겠습니다."
형식적인 인사를 건넸지만, 안쪽 어딘가가 묘하게 불편하게 끓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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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스케줄 끝났으면, 바로 숙소로 모실게요."
이현은 딱딱했지만 효율적이었다.
차 안에서는 라디오도 틀지 않았고,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다.
하지만 주원은 그런 이현이 오히려 신경 쓰였다.
'이상하네… 난 보통 이런 스타일엔 관심 없었는데.'
창밖의 불빛이 흐르고, 차는 조용히 고속도로를 달렸다.
주원은 무심코 이현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, 문득 깨달았다.
그 눈빛—자기를 '아이돌'로 대하지 않는 그 무심함—그것이 낯설고도 자극적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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🛏 숙소, 새벽 2시
"도착했습니다."
이현은 짧게 말하고 조용히 문을 열어줬다.
주원은 슬리퍼를 끌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.
말없이 소파에 털썩 앉아, 머리를 감싸쥐었다.
그리고, 이현이 뒤따라 들어와 가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.
"이런 것까지 굳이 안 해도 돼요."
"계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."
"웃기지도 않네."
짧은 신경질.
하지만 이현은 미동도 없이 고개를 들었다.
"…오늘 컨디션 안 좋으셨던 것 같네요."
"그쪽이 뭘 안다고."
주원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.
그리고, 침묵.
차가운 정적이 흐르고, 둘 사이엔 묘한 공기가 피어올랐다.
이현은 천천히 주원에게 걸어와, 눈높이를 맞췄다.
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.
"그냥… 괜찮지 않아 보여서요."
그 말 한마디.
주원의 가슴 어딘가가 내려앉았다.
그 누구도 그걸 물어보지 않았다.
그 순간, 갑작스레 눈가가 따끔해졌다.
그래, 이런 건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.
울고 싶어도, 울 수 없는 위치였다.
하지만 지금 이 사람 앞에서는…
이상하게도, 무너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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💧 조용한 밤, 미묘한 거리
이현은 주원을 바라보다가, 조용히 작은 수건을 꺼내 그의 이마에 댔다.
식은땀이 맺혀 있었기 때문이다.
그 손길은 조심스럽고 조용했다.
하지만 그 안에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.
주원은 그 손에 깜짝 놀라 물러서려 했지만,
이현은 그대로 눈을 마주친 채, 천천히 손을 떼었다.
"…죄송합니다. 너무 가까웠죠."
"...괜찮아요."
잠시, 정적.
그리고 둘 사이의 공기에는 알 수 없는 열기가 섞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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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원은 그를 바라봤다.
그 눈, 그 숨결,
그리고 단 몇 초 전, 닿았던 그 손길의 감촉.
무언가가 시작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.
아직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,
이 감정은… 처음이었다.